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토쿠 덴노 (문단 편집) === 되풀이된 역사 === 1141년, 도바 상황은 스토쿠 덴노에게 양위하라고 강요했다. 인세이를 행하면서부터 도바 상황은 [[후지와라노 도쿠시]]를 총애했다. 도쿠시가 나리히토 친왕을 낳자, 도바 상황은 나리히토를 천황으로 세우고자 양위를 압박했던 것이다. 《고사담》의 서술이 사실이라면, 도바 상황은 '''할아버지(시라카와 덴노)와 똑같은 방법으로''' 복수한 셈이었다. 물론 그 복수의 대상이 맏아들인 스토쿠 덴노였다는 것이 문제였지만. 결국 아버지 도바 상황의 강요로 스토쿠 덴노는 나리히토 친왕을 자신의 중궁인 성자의 양자로 들인 후 양위했는데, 이가 바로 [[코노에 덴노]]였다. 형식상 코노에 덴노는 스토쿠 덴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도바 상황이 죽은 후에는 상황으로서 인세이를 개시할 수 있어야 했다. 하지만 도바 상황은 코노에 덴노가 스토쿠 상황의 '''아들이 아니라 아우'''라는 점을 명백히 해서, 자신이 죽더라도 스토쿠가 인세이를 할 수 없도록 명분을 막아버렸다. '''인세이는 원칙적으로 천황의 아버지가 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.''' 불만이 가득차게 된 스토쿠 상황은 그 후 [[와카]]에 집중했다. 와카를 장려한 덕에 당대의 와카계는 스토쿠 상황 중심으로 흘러갔다. 한편으로는 스토쿠 상황도 미래를 대비했다. 자신의 맏아들인 시게히토 친왕을 아버지 도바 상황이 총애하는 아버지의 제2황후 [[후지와라노 도쿠시]]의 양자로 들어가게 했다. 이렇게 한 데에는 코노에 덴노가 병약하다는 이유가 있었다. 만약 코노에 덴노가 붕어하게 된다면 후사는 시게히토 친왕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고, 그렇게 되면 스토쿠 상황은 덴노의 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인세이를 행할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